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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야기

<정도전39회>정몽주의 최후, 그는 진정 시대의 대세를 몰랐을까?

by 소금인형2 201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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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정도전'에서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라고 불리는 정몽주가 선죽교 다리위에서 비장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24일 방송된 <정도전> 39회에서는 이방원에게 회유의 뜻이 담긴 하여가를 받은 정몽주가 이방원을 찾아가 단심가를 건네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 보여졌습니다. 그리고 옛이름 선지교 위에서 "고려의 충신으로 죽게 해줘 고맙다." 라는 말을 남기며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한글을 배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래서 특별히 새로울 것 같지 않은 이야기인 하여가와 단심가, 그리고 선죽교에서의 정몽주의 최후를 이처럼 긴장감 있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뭐래도 역사적으로 실존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연기자들의 뛰어난 연기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배우 안재모는 대업과 정몽주 사이에서 고민하는 아버지 이성계의 모습과는 달리 어차피 함께 하지 못할 사람이면 제거하는 것이 대업에 이롭다는 너무나 솔직하고 사실적인 모습을 잘 보여 주었습니다. 이성계 역의 유동근 역시 한편으로는 대업을 향한 강인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함께 하지 못한 정몽주의 죽음에 대해 찢어지는 심정으로 오열하는 명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정몽주 역의 임호는 자신의 비극적 결말을 예감하면서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으로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정몽주에 대한 여러가지 역사적 평가 중 한 부분은 그가 비록 성리학의 대가 였으며 고려에 충절을 바친 충신이었지만 개혁과 변화가 필요했던 고려말에 역성혁명이라는 시대적 대세를 간과했다라는 주장입니다. 여기에는 정몽주가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함께 했더라면 조선 건국이 보다 안정적이고 탄탄한 기반위에 설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과연 정몽주는 시대의 대세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것을 간과했을까요?

 

역사적 기록에 남아있는 정몽주에 대한 내용은 그가 24세의 나이에 조정에서 실시한 과거 3장에 연달아 장원급제를 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몽주가 성균관에서 주자집주를 강의할 때에는 그 실력이 뛰어나 스승인 이색마저 그의 강의가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정몽주를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평가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평가를 받던 정몽주가 공민왕의 개혁이 실패한 뒤 권문귀족 세력의 횡포로 인해 피폐해져가는 고려의 사정을 모를 리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 또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정몽주는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와 함께 공양왕을 옹립하였으며 역성혁명파라 할 수 있는 급진사대부들과 함께 여러가지 개혁방안을 논의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함께 할 수 있는 여러차례의 기회가 있었지만 정몽주는 끝내 역성혁명에 반대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실리와 대세라는 이름으로 자신에게 이익이되는 행동으로 명분과 타협하고 시대의 대세를 거스르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좋지 않은 결과가 눈에 뻔히 보이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가야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몽주에게 있어서 고려는비극적 결말이 예상되더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그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몽주도 다 쓰러져 가던 고려를 다시 일으킨 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며 역성혁명이라는 것이 어쩌면 시대가 요구하는 대세임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아무리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역성혁명 이라는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몽주가 끝까지 고려를 포기하지 못하고 역성혁명이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이 만고의 진리라고 생각했던 성리학에 근거한 명분과 소신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소신을 지키기 위해 비극적인 결말이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 길을 걸어갔던 정몽주의 비장한 죽음은 실리와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시대조류의 대세를 따른다는 이유로 자신의 소신과 주장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귀감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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