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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야기

불의 여신 정이,알고보면 더 재미있는 광해군과 임해군의 라이벌 관계.

by 소금인형2 2013.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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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드라마 <불의 여신,정이>가 등장인물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습니다.태어날 때부터 시각,미각,후각,청각, 그리고 촉각이 발달하여  조선 최초의 여성 자기장이 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조선 자기의 우수성을 선보였던 실존인물 백파선의 어린시절과 15년간 왕위에 재위했으나 왕으로 불리지 못하는 광해군, 그리고 장남이면서도 동생에게 밀려 왕이 되지 못한 그의 친형 임해군의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선보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8일 방송분에서는 임해군에 의해 깨어진 종묘제에 쓰일 태종대왕의 단지를 복원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광해군의 모습과 이 과정에서 그를 돕게 되는 정이의 모습이 보여졌습니다. 단지를 깬 것은 정작 임해군이었지만 광해군이 분원의 부제조였기에 잘못을 뒤집어써야 했고 대역죄를 면하기 위해 태종대왕의 단지 복원에 나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조선최고의 자기장 을담(이종원 분)을 찾아간 광해군은 그곳에서 정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녀가 을담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을담은 깨진 태조대왕의 단지를 복원하기 위해 먼저 스승인 문사승(변희봉 분)을 찾았으며 그곳에서 굼베이와 달걀 흰자를 이용해 자기를 꼼꼼히 복원하는 딸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조선 최고의 자기장이 될 것이라는 미래를 예감하게 됩니다. 이는 조선 최초의 여성 자기장이 될 주인공 정이의 천재성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일로 정이와 광해군은 또다른 인연의 끈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 인연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게 될 지 자뭇 궁금해 지는 대목입니다.

 

사건의 발단이 된 배경은 임해군이 자신을 제치고 분원 부제조가 된 광해군을 시기하고 있던 중 여기에 종묘제에 쓰일 제기를 만들게된 을담이 과거에 자신의 친모인 공빈 김씨에게 해가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을 이강천(전광렬 분)에게 듣게 되어 격분한 나머지 태종대왕의 단지를 깨버린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임해군의 모습은 아버지 선조의 총애를 얻기 위해 그의 비위를 맞추며 동생인 광해군을 견제하기 위해 그를 위기에 빠지게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광해군을 역모죄로 몰아갈 수 있다며 자신을 부추기는 이강천의 말에 광해군은 자신의 동생이지만 세자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대상이라며 자신의 야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처럼 같은 어머니를 두었지만 왕위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했던 임해군과 광해군의 역사속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우리에게는 임진왜란 당시의 왕으로 잘 알려진 선조는 8명의 부인 사이에서 총 14남11녀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이중 후궁 공빈 김씨의 소생이 임해군과 광해군입니다.선조는 정실에게서는 왕자를 보지 못하다가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되어 14년간 세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때에 선조의 두번째 정실부인인 인목왕후가 영창군을 낳게 됩니다.

 

 

따라서 영창군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비록 서자였지만 임해군과 광해군이 왕위계승을 다투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다른 후궁의 소생인 신성군까지 왕위계승에 뛰어들게 되어 선조임금 당시에 세자책봉의 다툼은 그야말로 치열한 권력암투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이중 드라마에 나오는 장자인 임해군과 선조의 아들 중에서 가장 똑똑했다는 광해군의 경쟁이 가장 치열했을 것입니다.임해군과 광해군의 생모인 공빈 김씨는 1577년 광해군을 낳은 후 산후병으로 일찍 세상을 뜨고 마는데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게 된 이러한 배경이 임해군의 성질을 난폭하게 만들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역사속에 임해군의 모습은 장자였기에 당연히 세자가 되어야 함에도 성질이 난폭하여 동생인 광해군에게 세자자리를 빼앗기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비운의 왕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난폭한 성격때문에 세자에 오르지 못한 그는 임진왜란 때에는 근왕병을 모집하기 위해 함경도로 떠났다가 그곳에서 반란을 일으킨 국경인 등에 의해 왜장 가토에게 포로로 넘겨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여러차례 석방 협상을 통해 결국 서울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이 일은 그의 포악한 성격에 더욱 불을 붙여 분함을 풀기 위해 여러차례 민가에 들어가 재물을 약탈하고 상민을 구타하는 등의 행패를 부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훗날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뒤 명나라가 서열문제를 거론하며 현장실사를 하러 오게 되자 유배지에서 나와 일부러 미친척을 해 광해군을 도왔다는 내용이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에 나와 있는 것으로 봐서는 그렇게까지 막되먹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역모를 염려한 일부 대신들의 주청을 못이긴 광해군에 의해 끝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광해군은 임해군과 마찬가지로 후궁인 공빈 김씨의 소생입니다. 적자가 없던 선조는 후궁의 자식들 중에서 세자를 책봉하게 되는데 선조가 광해군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광해군을 총애해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나라가 국난에 빠지게 되자 이를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선조는 어쩔 수 없이 피난지 평양에서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게 됩니다.

 

비록 16년 동안 세자자리를 유지했지만 선조는 그가 세자자리에 있는 것이 탐탁치 않았으며 훗날 정비인 인목왕후가 영창군을 낳은 이후에는 노골적으로 그를 무시하며 적자인 영창군을 다음 보위에 올리고자 합니다. 세자 문안인사를 온 광해군에게 너는 임시로 그자리에 있는 것이니 다시는 문안을 오지 말라는 소리까지 하게 되지만 결국 선조는 세상을 떠나고 광해군이 왕위를 잇게 됩니다.

 

오늘날 임금의 호칭까지 듣지 못할 정도로 광해군이 폭군이었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습니다. 그가 폐륜을 저질렀다고 보는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죽인것과 영창대군의 생모이며 선조의 정비인 인목대비를 폐서인으로 만든것은 당쟁의 결과이며 왕권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수많은 형제와 친척을 죽인 태종과 세조와 비교해 보더라도 폭군소리를 들을만한 사안은 아닙니다. 또한 그가 그동안의 명나라를 향한 일방적 사대주의를 버리고 실리주의 외교노선을 택한 것은 당시의 국제사정을 감안한 현실적인 선택으로 오히려 칭찬받아야 할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이라서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인조에 의해 광해군에 대한 많은 일들이 왜곡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 <불의 여신,정이>는 기존의 사극과 마찬가지로 고난을 극복하고 조선 최초의 여성 사기장이라는 자리에 우뚝선 입지전적인 인물의 삶과 사랑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그녀가 살아온 파란만장한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사극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가 바로 왕위를 둘러싼 권력 암투 입니다.

 

세자책봉을 둘러싸고 벌어지게 될 임해군과 광해군의 치열한 다툼, 여기에 선조의 또다른 후궁이면서 자신의 아들인 신성군을 세자로 만들기 위해 계략을 짜는 인빈 김씨(한고은 분)의 모습이 드라마의 긴장감을 더해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우리는 이미 역사적 사실을 통해 그 승자를 알고 있지만 그 과정을 드라마로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처럼 치열한 권력 투쟁을 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본다면 드라마가 한층 더 재미있어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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